환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느끼는 증세들, 그러니까 허리나 엉덩이 통증, 다리 저림 같은 것은 척추 부위에서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요. 막연한 통증이라기보다는 저릿하면서 전기가 온 듯한 느낌도 들고, 또 길고 넓은 부위에 걸쳐 당기고 쑤시는 걸 보면 말이에요. 신경 때문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복잡하고 재미없는 설명이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니 조금만 참고 읽어주십시오.
만약 의사들이 설명한느 것처럼, 허리 디스크나 협착증에 의해 척추 신경이 눌려져서 허리, 엉덩이, 다리 쪽으로 통증이나 저림 증세가 생겨날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척추신경은 '운동', '감각', '자율신경'의 세 가지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움직임을 관할하는 운동 기능, 촉감이나 열감 등 다양한 느낌을 포착하는 감각 기능, 또는 신체 활동의 다양한 균형을 유지하는 자율신경 기능을 척추신경은 두루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만에 하나 이 척추신경이 심각하게 눌려서 신경 증세를 보이게 될 경우에는 매우 다양한 현상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며, 촉감이나 외부의 자극을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감각 소실이 오며, 자율신경에까지 이상이 와서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등 여러 증세가 생겨나게 됩니다. 즉 척추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척추신경이 담당하는 세 가지 기능 모두에 이상이 나타나 이 대표적인 세 가지 증세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허리 척추관 내 척추신경 다발의 별칭이 마미이기 때문에, 이렇듯 심각한 마비 증세를 일컬어 '마미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허리 척추뼈에 심각한 외상을 입어서 척추신경이 손상된 경우에 이런 증세가 나타납니다. 간혹 척추 수술 때 실수로 척추신경을 직접 손상시키거나 척추관 내에서 다량을 출혈이 생겨나거나, 시술이나 신경성형술의 부작용으로 마비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디스크나 협착증의 증세는 오직 감각 이상밖에 없습니다. 즉 외부에서 충격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통증이 느껴지거나 저리거나 쿡쿡 쑤시는 것과 같은 이상 증세가 느껴지는 것이지요. 만약 의사들이 설명하는 대로 디스크나 협착증으로 인해 척추신경이 심각하게 눌려서 신경 증세가 생겨나는 것이라면, 운동이나 자율신경의 증세도 함께 일어나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고 유독 감각 신경 증세만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환자: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척추신경 일부분만 아주 살짝만 눌려져서 그게 담당하는 역할 중 일부인 감각 증세에만 이상이 올 수도 있지 않나요?"
음..., '신경이 여러 가닥이고, 그래서 그 중 일부만 눌려서 증세가 올 수도 있다...' 물론 일반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 그럴 수 없는지를 알려면, 좀 더 난해한 이야기를 해드려야 하겠군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치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자세하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좀 어렵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몸에는 신경 전달 체계가 존재합니다. 즉 온몸으로 마치 뿌리처럼 흩어져 있는 신경이라는 회로를 통해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는지 하는 신호등 체계와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경 전달 체계에는 '원심성(efferent)'과 '구심성(afferent)'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달체계', 즉 중심인 뇌와 척수에서 말초로 향해 내려가는 방향과 '상달체계', 즉 각각의 여러 말초들에서 중심인 척수와 뇌로 향하는 방향이 존재합니다.
로봇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로봇의 CPU에서 여러 의사결정을 내려, 전기선을 통해 여러 신체 말단까지 이 정보를 내려 보냅니다. 이것이 원심성입니다. 반면 신체 말단에서 감지한 다양한 정보들을 다시 CPU에게 올려 보냅니다. 이것이 구심성입니다.
그런데 신경 전달 체계의 원심성은 뇌에서부터 아래의 말초를 향해 '충동(정보)'을 운반함을써, 팔이나 다리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 신경' 전달 체계입니다. 즉 뇌에서 보내는 정보는 오로지 운동 신경에만 명령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신경 전달 체계의 구심성은 팔이나 다리를 포함한 여러 말초신경에서 생겨난 감각을 위에 있는 척수나 뇌로 운반합니다. 즉 구심성은 오직 '감각 신경(촉감, 온도감, 통증, 위치 감각)' 정보만을 이동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림 8]을 보시지요.
팔이나 다리에 통증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감각은 위쪽의 척수와 뇌를 향해 운반되는 일방통행의 체계를 통해 전달됩니다. 거꾸로 뇌에서 통증이 생겼다고 해서, 이 감각이 일방통행의 전달 체계를 거스르고 내려와서 손이나 발에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허리 척추신경이 눌려서 통증이 생기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느껴진 통증 역시 일방통행의 전달 체계를 통해 뇌와 척수로만 전달되니다. 그러니 뇌에는 '척추신경이 아프다.'는 감각만 전달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전달 체계가 없는 이 척추신경의 감각 증세가 거꾸로 거슬러 내려가 엉덩이나 다리로 옮겨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팔이 저리다든가 다리가 저린 증세의 진짜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매우 핵심적입니다.
환자: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뭔가 어렵네요."
간단하게 도식화해서, '근육을 움직여라!' 하는 파란 신호등의 신경정보는 '위(뇌) → 아래(팔다리)'로 전달되고, '아프다!' 하는 빨간 신호등의 신경 정보는 '아래(팔다리) → 위(뇌)'로만 전달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환자: "그러니까 통증이든 저림이든 '감각'은 아래에서 위로만 전달 된다는 그런 뜻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니 이 신경 전달 체계의 원리만 간단히 적용시켜보아도, 척추 속에 뭔가 원인이 있어 생겨난 감각이 절대 아래 쪽에 있는 엉덩이나 다리로 전달될 수 없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 협착증, 아니 아무리 어려운 말로 현란하게 설명한다 해도, 그런 일은 의학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저리든 쿡쿡 쑤시든 뻐근하든 시큰시큰하든, 모든 엉덩이나 다리의 통증과 저림 증세는 척추와는 무관합니다.
출처
디스크 권하는 사회, 황윤권, 에이미팩토리
신경이 눌리게 되면 여러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근데 디스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이 눌릴 때 생기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척추에서 생긴 문제 때문에 엉덩이가 저리거나 다리가 저리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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