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가장 중요한 시간 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까지의 수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거듭 확인시켜 준다. 이미 1960년대에 미용상의 이유로 안구를 제거한 시각장애인들에게서 간헐적인 두통이나 우울증, 수면장애와 같은 식물신경계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몇 년 전 그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과학적으로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되었다. 오로지 빛을 지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각적 광색소가 눈에서 발견된 것이다. 소위 멜라놉신 melanopsin(그리스어로 '검은 시각 생소'라는 뜻이다)이라고 불리는 이 색소는 그 전까지는 남조류나 일부 식물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녹색과 청색 범위 내의 단파광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색소를 담고 있는 신경세포는 오랫동안 잘 알려진 망막 속의 막대세포(간상세포)나 원뿔세포(원주체)와는 다른 것으로서, 눈에 띄지 않는 안저의 신경 끄트머리에 있으며 광민감성 세포로서 두뇌의 시신경교차상핵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신경세포의 역할은 내부의 시계와 외부의 빛과 일정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최근 연구를 통해 안구에 새로운 감각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처음 안구에서 감각세포가 발견된 것은 1880년이었다. 새로운 감각세포가 뒤늦게 발견된 것은 우리가 빛에 대한 감각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조차도 생체리듬을 외부의 빛의 리듬과 일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의식적인 감지가 아니라 식물 신경계와 생체리듬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시각세포는 선사시대의 유물이라는 점이 확실하다. 생물체가 의식적으로 빛을 받아들이기 전에 멜라놉신은 남조류를 비롯한 여러 원시 생물의 세포 기능을 조절하고 생체시계를 안착시켰다. 이 새로운 시각 색소에 대한 연구가 그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아서 멜라놉신의 발견과 함께 과거 인체에 대한 광민감성 척도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밤이 오고 수면 상태에 들면 건강한 인간의 몸에서는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특별한 호르몬이 생성되어 인체에서 다른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멜라토닌은 최고의 항산화물질로서 세포 파괴와 노화 등을 유발하는 활성산소로부터 우리 몸의 조직을 보호해 준다. 또한 우리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수면장애와 시차증 등을 극복하게 해 준다. 1990년대에 과학자들은 멜라토닌이 밝은 빛에 억제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낮에는 활기와 에너지가 넘쳐야 하므로 당연한 일이다. 멜라토닌 억제 수치를 측정하기 위한 첫 번째 실험에서 연구자들이 붉은 전구를 사용했는데, 매우 밝은 사무실의 조도와 같은 1,000럭스 이상의 전구를 사용했고 멜라토닌이 감소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다음에는 1998년에 새롭게 발견한 멜라놉신 시각 색소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록색 전구를 사용해 다시 한번 실험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건강을 위해 아주 중요한 멜라토닌이 밤에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는 1,000럭스의 조명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매우 약한 3럭스의 청록색 불빛으로도 충분했다. 이는 달빛 보다 살짝 밝은 정도다. 이 주제에 관한 의학 전문 서적을 모두 재검토해야 할 발견이었다.
이 결과는 우리의 일상이나 웰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리 약해도 한낮의 빛과 같은 조명은 잘못된 시간-가령 새벽 2시와 같은 시간-에 망막에 닿으면 우리 몸의 리듬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리면 우리 몸은 더 많은 멜라토닌을 생산하는데 멜라토닌이 수면을 원활하게 하고 체내 혈액과 조직 속의 활성산소를 파괴한다. 한밤중에 TV를 몇 분 시청하거나 침실이나 침대에 에너지절감 램프를 켜 두는 것만으로도 멜라토닌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으며 생체리듬과 밤에 이루어지는 재생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 이는 욕실이나 침실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를 질문하게 한다. 형광등이나 청록색의 에너지절감 램프 등은 멜라토닌 감소에 큰 역할을 한다. TV 화면이나 컴퓨터 화면도 마찬가지다. 일반 전구나 할로겐 빛은 상대적으로 밤에 켜 놓을 때 우리 몸의 리듬을 그리 심하게 방해하지는 않는다. 다른 장에서 여러분은 일반 전구를 사용하고 저녁 시간에 TV 화면이나 컴퓨터 화면을 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리듬을 훨씬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생각이 현대식 삶에 익숙한 여러분들에게는 과장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전깃불이 두어 세대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라. 우리의 증조부모님들은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해가 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다.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몇 개 도시에 가스등이 나타났다. 그 전까지 혹은 그 후에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촛불이나 송진을 이용한 횃불을 사용했고 난로나 모닥불 등을 이용해 어둠을 밝혔다. 붉고 노란 불빛은 우리의 생체리듬을 해치지도 멜라토닌의 생성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방 안의 불빛이 노란색이고 청색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쉽게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사실 우리 선조들이 200만 년 전에만 해도 모닥불 주위에서 잠을 청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우리 삶의 조건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출처
안 아프게 백년을 사는 생체리듬의 비밀, 막시밀리안 모저, 추수밭
'건강 관련 서적 > 빛'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면의 불빛을 노란색으로 바꿔라 (안 아프게 백년을 사는 생체리듬의 비밀) (0) | 2021.10.02 |
---|